코로나19라는 위기를 이겨내기 위해 우리는 지금까지 사용하지 않았던 과학기술을 총동원했다.
그 결과 전 세계는 웹2.0 시대를 벗어나 웹3.0 시대로 접어들었다. 웹3.0 시대는 탈중앙화된 플랫폼에서 사용자가 자신의 데이터를 소유하고 공유할 사람을 선택하고, 이에 따른 금전적인 보상을 얻는 환경이다. 최근 분산원장 기술인 암호화폐, NFT와 P2E(Play to Earn) 게임, 메타버스 같은 기술이 웹3.0 시대가 본격화되었음을 알렸다. 하지만 웹3.0 시대, 전 세계가 한층 더 가까워진 듯 보이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환경파괴로 인해 자연과 인간의 거리는 더 멀어지고, 실제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을 비롯해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크고 작은 전쟁은 일상의 삶을 위협하고 있다. 동시에 노동 없는 자본주의는 점점 사람들의 삶을 옥죄고, 더 나아가 인간성을 파괴하고 있다.
제빵사가 아니어도 컴퓨터로 빵을 만들 수 있는 시대이다. 장인의 손에서 만들어진 빵과 기계의 프로그램이 만들어낸 빵 가운데 어떤 것이 더 우리의 미각을 만족시킬지 섣불리 추측하기 어렵다. 같은 맥락에서 코로나19라는 바이러스의 출몰이 인간의 자연파괴에서 비롯되었지만, 여전히 우리는 자연을 훼손하며 편리한 일상을 영위하고 있다.
이러한 이분법적 구별은 거의 본능적이다. 우리 몸 안에 이미 이를 구분할 수 있는 유전자가 각인되어 있다. 여기서 시작된 지각세계의 폭은 고등동물로 가면서 점차 확장된다. 인간의 오감도 기본은 생존을 위한 것이지만 생존 이상의 것, 즉 문화와 예술과 관련한 감각 경험도 오감에 의존한다. 우리가 아는 세계는 세계 그 자체가 아니라 우리가 감각한 세계이다. 그래서 같은 사물, 사건을 접하면서 서로 다른 주장을 하고, 편을 가르기도 한다.
인간만이 지닌 감각이다. 인간 감각의 이러한 특성 때문에 두 개로 선명하게 구분되는 동물의 감각과 달리 인간의 감각은 고정되어 있지 않다. 자신의 생각이 편견일 수도 있음을 인정하는 것은 인간만이 할 수 있는 반성적 사유이다. 인간 세계는 흑백의 이분법이 아니라 다양한 컬러가 어우러진 멋진 신세계다.
1932년 올더스 헉슬리는 모든 인간의 존엄성을 상실한 미래 과학 문명의 세계를 신랄하게 풍자한 소설 『멋진 신세계』를 발표했다. 9년 동안의 파괴적인 전쟁이 끝난 뒤 전 세계는 세계국이라는 이름의 하나의 나라로 통합된다. 이곳에선 아무도 자연 임신으로 태어나지 않고 인공적인 방법으로 배양되어 만들어진다. 심지어 국가의 필요에 따라 다섯 계급으로 나눠 길러지게 된다. 발전된 과학기술에 힘입어 불행한 요소가 완전히 제거된 완벽히 통제되고 조정되는 세계. 존이라는 인물은 신세계의 경험을 ‘멋진 신세계’라 표현한다. 존은 이 멋진 신세계에 없는 것을 발견한다. 바로 비극, 고독, 불행, 슬픔, 개성과 같은 인간적인 것들이다.
인간이기에 가져야 할 고등 감각을 불완전하다고 해서 과학기술로 제거한다는 것은 그 자체로 인간임을 포기하는 행위이다. 이쪽과 저쪽, 온라인과 오프라인, 현실과 환상, 통제와 자유, 인간적인 것과 인공적인 것, 문명과 야만, 과거의 생활방식과 새로운 생활방식이라는 두 개의 세계로 구분하려는 우리의 감각을 확장해야 한다.
그리하여‘이세계’는 여러 가지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먼저 저쪽 세계의 반대되는 이쪽 세계이기도 하고 이(異) 세계, 즉 기이하거나 특별한 세계를 뜻하기도 한다. 문학이나 만화 장르에서 말하는 판타지 세계, 현실세계와 대칭되는 인터넷 세상(Explore)인 디지털 세상을 뜻하기도 한다.
코로나19가 인간에게 치명적인 위협을 가했던 시기가 지나가고 있다. 우리는 코로나19를 겪으면서 무엇이 달라졌는가. 예술, 그 가운데 만화와 만화가, 만화 생태계의 사고는 넓어졌는가, 좁혀졌는가. 2022년 부천국제만화축제는 지금 만화계의 흐름과 다양한 볼거리, 즐길거리, 생각거리, 할 거리를 제안함과 동시에 인간이 흔들려서는 안 될 ‘이세계’의 중심을 다잡고자 한다.